'반짝반짝 빛나는'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7/25 Act 5, 누군가를 기다린 다는 것은.
  2. 2008/07/25 Act 4, 안개.
  3. 2008/07/25 Act 3, 자수정 빛의.
  4. 2008/07/25 Act 2, 야릇한 기분.
  5. 2008/07/25 Act 1,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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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 안개.


노오란 꽃잎을 바라보다가 순간 멈칫했다. 부스스스 갈대소리가 나는듯한 바람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나는 다시 난간을 붙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 있는 이 건물만큼 큼직하고 커다란 키의 건물 밑으로 아찔할 만큼 낭떠러지같이 낮은곳에서 개미처럼 작은 머리의 사람들이 큰 머리를 이고 끙끙대며 걷고있었다. 어디론가로 종종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띠링. 핸드폰에서 소리가 울렸다. 목에 걸어둔 바형의 핸드폰 액정이 오후 2시를 알렸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지났나 하는 생각에 난간에서 멀어져 문을 잡았다. 그리고 황혼의 붉은 그것보다도 더 붉은 빛이 반사되어 눈가를 찌르는 듯해서 나는 그곳으로 부터 빠져나왔다.



이린씨, 어디 갔었어요?

잘 다듬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사무실의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우수에 찬 듯한 눈빛인듯한데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것을 그제서야 느끼고 황급히 내 책상으로 가서 안경을 집어들었다. 돌아보니 내 책상 맞은편에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아, 네. 잠시 속이 좋지 않아서요.

의자의 양 옆 사이드를 붙잡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그를 보았다. 그는 나를 부르며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커피포트쪽 테이블로 자신의 머그컵을 들고가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이린씨는 뭐로 마실래요?

네? 아, 전 괜찮아요.

그는 자신의 머그컵을 들고와 자리에 앉으면서 우스갯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어, 이린씬 차도 다 마시고 와버렸나보네. 난 이린씨랑 차마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보조개가 파인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아, 그래 이 사람 웃음이 예쁜 남자였지.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짙은 눈썹에 날이 선듯한 작지만 오똑한 코, 웃으면 보조개가 들어가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서글서글한 눈매가 부드러웠지.

미안해요. 성준씨. 다음에 부탁할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시선을 아래에 두었다. 그의 입가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미소 짓고 있었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 차를 마시고 있는 성준을 쳐다보았다. 나와 입사동기이면서도 그는 어딘가 모르게 나에게 있어서 야릇한 느낌을 주곤 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나에게 알 수 없는 거리에, 알 수 없는 막을 씌워 쳐다보고 말하고 느끼곤 했다. 지금도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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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3, 자수정 빛의.


크게 숨을 들이키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전화를 받고 얼어붙은듯한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

여보세요.

긴장한 듯한 목소리가 역력해 보인다. 전화 속 그가 알아차리고 안부를 물으며 걱정하리라. 거기까지 생각하는 내가 싫어져서 다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누나. 나 세인이야.


전화 속 그는 그러한 내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다독이는 것 처럼 말했다.


요즘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아? 무슨 일있어?

아니, 라고 말하려다가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나는 그래, 있어. 라고 말해버렸다.

무슨 일인데.
넌 몰라도 돼.
­…….
…….

세인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을 잇지 못한채 전화기 옆의 작은 화분을 바라보면서 뒤이을 말을 생각하고 있다. 세인은 뭐라고 말을 할까. 조바심이나서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전화기를 잡은 오른손은 땀에 젖었다.

그런게 어딨어. 그러지 말고 말해봐.
네가 소원이라도 들어주게?
뭐?
아니야.

무슨 황당무게한 말이냐고 물을 것 같던 그의 목소리는 사그라 들었다. 그는 분명 내가 한차례 자신을 또 거부했을 것이라 생각했을거라고 나는 짐짓 생각했다. 수화기 속에선 또르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세인의 집에 있는 수조관의 공기 소리였다. 세모모양의 벽에 붙어있던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수조관에 담긴 한 마리의 열대어. 몸짓도 작고 색도 옅은 파랑에 꼭 세인을 닮았던 그 열대어. 유유자적 물속을 헤엄치는듯 했지만 항상 힘든 몸짓을 하고 있는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누난, 항상 그렇게 피하고만 있을거야. 그렇지.
…….

내가 세인의 수조관 속에 있는 세인을 닮은 열대어를 생각하고 있을때, 세인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나로부터, 그리고 그 열대어로부터. 퍼득 정신이 들어 세인의 말을 곱씹었을땐 그의 자수정빛 눈동자가 나를 흘끗 쳐다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항상 말을 할때면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그윽한 자수정빛 눈동자로 훤희 들여다 보고 있는듯 했다. 소름이 끼칠정도로 세인은 곧은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그틀에 벗어나 방황하는 사람인것 같아 항상 초조하고 두려웠다. 나는 나의 남동생인 세인의 눈동자가 무서웠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또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한채 수화기를 들고 그의 목소리만 잠자코 들었다. 세인은 그런 내가 못미더운듯, 걱정이 되는듯 잔소리를 이었다.

언제까지 피하고만 있을 수 있는건 아니잖아. 누나.
알아. 알고 있어.


두 눈을 질끈 감고 세인의 목소리의 잔상을 지우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깜박인다.


나 이제 나가봐야 돼.
……그래. 다음에 전화할게.
응.

뚜뚜뚜- 세인은 먼저 전화기를 내렸고 나는 멍하니 수화음을 듣고 무릎을 꾾은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몇 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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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2, 야릇한 기분.



또각 또각. 흰색 무늬 대리석을 한참을 걷다가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똑같은 무늬. 일직선으로 길게 쳐진 그림의 단아한 벽지. 차가운 인상의 파란색 창. 항상 보는 이곳이 온통 낯설게 느껴지는 위압감. 커피 포트로 커피를 뽑고 종이컵을 쥐고 있는데 기분이 울적한 것 같아서 기분 전환겸 바람을 쐬러 옥상을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점잖게 사선 무늬의 넥타이를 맨 남자가 타더니 곧 13층에서 내렸다. 그 옆에 전화를 하며 서 있던 짧게 파마한 머리의 여자도 같이 내렸다. 나 혼자 타고 가는 엘리베이터는 한참을 걸려 도착했다. 또각 또각 6센티의 굽으로 마찰음을 내며 문을 벌컥 열었다. 휘오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뒤로 휩쓸렸다. 머리카락을 진정시키려고 포니테일로 묶고 시선을 앞으로 한채 몇 발자국을 띄었다. 아슬아슬하게 누군가 걸터 앉아 있었다. 옥상의 끄트머리에 봉을 잡고 서 있는 그 모습이란 아찔하고 금방이라도 뛰쳐내릴 기세같았다.

저기요.

어디서 나온지 알 수 없는 용기로 상대를 불렀다. 어느 부서의 누구인지 얼굴을 보고 확인코자 불렀는데 상대는 인기척을 하지 않은 나를 휙 돌아서서 보더니 괜히 노려봤다. 괜히 불렀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낯선 얼굴이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에 어딘가 강해보이는 인상. 캐시미어의 단정한 차림새. 낯은 굽의 신발. 의아하게도 명찰이 없는것이 보아 사내 사람이 아닌듯 했다. 긴 생머리의 그 여자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달아나 버렸다. 이상하게 여겨져서 그 여자가 서 있던 곳으로 가보았다. 그 머리카락처럼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에 담겨져있던 것이 무엇이였나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 생겨서였다. 두리번 거려보니 내가 서있는 곳과 같이 높은 층의 건물들과 저 밑으로 아득하게 보이는 도로들 뿐이었다. 뭘 보고 있었던 거지. 밑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로위의 차와 열심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여러개의 상점들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뒤돌아 서려는데 내 발꿈치 밑으로 작은 민들레가 보였다. 이제막 자리를 잡은듯 삭막한 대리석 틈의 작은 먼지 같은 흙사이에서 뿌리를 내려 연두빛의 잎을 내딛고 있었다. 아직 씨를 뿌리지 못하는 노오란 꽃을 품은 꽃이 내 눈동자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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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1,
문득.

누나 울어?
아니.
그럼 왜 그래.
그냥.



남동생이 오랜만에 전화를 하곤 자꾸 캐묻는다. 내 목소리가 눅눅했던가. 난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고개만 젓는다. 그리고 버릇처럼 그냥. 이라며 내뱉고 나 바빠서 안되겠다, 끊는다. 라고 말하고 통화를 끝낸다. 손에 쥐고 있던 전화기를 내동댕이 치듯 침대에 떨어뜨리고 그 옆으로 나도 나란히 눕는다. 시선이 위로 위로 향했다. 천장에 분홍색 꽃들이 조잘조잘 달려있다. 왠지 어느 한 부분이 짙고 옅고 해서 진짜 분홍빛으로 물이 든것 같이. 작고 소소한 꽃잎. 바람이 살살 불기라도 하면 희고 반짝이는 커튼이 불어대서 이리저리 꽃잎과 춤을 춘다. 마치 벚꽃이 휘날리는 듯이. 누나 울어? 아니. 안운대도. 허공에서 들리는 세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혼자서 대꾸한다. 나 안울어. 안울어. 울긴. 바람이 불어서 목소리가 흐느끼는 것 처럼 들렸나보다야. 그냥 나 잠잘려고 했는걸.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가 진짜 눈물이 날것 같아서 오른팔로 눈을 가렸다. 빛도 꽃잎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복숭아 향이 나는 팔만 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작은 어둠. 이제는 불안에 조금 운다. 으헝헝 울려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숨죽이게 울게 되었지만 조금 운다. 울고 나니 우유를 마시고 싶어졌다. 왠지 모를 허기가 져서 무언가를 마시고 싶어졌다. CD케이스를 뒤적거리며 듣고 싶은 CD를 집어 틀어놓고 부엌에 갔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천미리 우유가 두어개 있다. 하나를 세모부분으로 접어 조심히 터서 손잡이 없는 투명한 컵에 부었다. 한손에 쥐고 그자리에서 스트레이트로 쭉 들이켰다. 입에서 달달하고 묵직한 맛이 느껴지는 동시에 약간의 포만감이 들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컵은 개수구 앞에다 조심히 놓고 다시 방에 들어와 이불을 개켜 누웠다. 음악에 취해 잠이 들것 같았다. 조금 울고 나니 몸이 지쳐 잠이 잘 올것 같은 편안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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